혼천의 논란


[출처: 한국일보]

새 1만원의 가장 큰 특징은 처음으로 과학기술을 상징하는 도안이 삽입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 천문관측장비인 혼천의, 천체망원경인 보현산 천문대 광학망원경 등 3가지 과학유산이 동시에 1만원권의 배경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1만원권 지폐에 나타난 우리 전통과학 (연합뉴스 1.21)
새 지폐 22일부터 유통, 전통 과학 기술 도안 (한국일보 1.21)

이에 대해 과학계에서는 꽤 반가웠던 모양이다. 도안이 공개된 이후 과학계 종사자들이 쓴 신권에 대한 칼럼이나 기사가 종종 소개되고, 심지어 김우식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이 한은 총재에게 감사편지까지 썼다고 한다.

동북공정과 세종대왕 (중앙일보 06.9.9)
새 만원권 지폐의 도안 (서울경제 06.6.28)

그런데 신권이 처음 유통되었던 22일 아침, 신문 기사 하나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뒷배경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혼천의가 사실 우리나라 고유의 과학유산이 아니라 중국에서 도래된 물건이라는 것이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 그 이후부터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가 연이어 올라오고 네티즌들의 반응이 비난으로 변했다.


[출처: 경향신문]

새 1만원권 지폐 도안 '혼천의' 오류 논란 (경향신문 1.22)
1만원권 신권 논란... "중국유례 '혼천의'를 담았다" (매일경제 1.22)
중국유래 '혼천의'를 우리 지폐에 담다니... (조선일보 1.22)
새 만원권 도안 '혼천의' ... 중국산 논란 (노컷뉴스 1.22)
1만원권 '혼천의' 결국 '미술전공자 말대로' (경향신문 1.22)
새 1만원권 '혼천의' 논란 "화폐는 국가얼굴... 오류 덮을 수 있나" (경향신문 1.23)

이 기사들에는 많은 인사들의 발언이 소개된다. 충북대 이용삼 교수(천문학과), 서울대 문중양 교수(국사학과) 등 과학계 인사들이 주로 등장하여 문제제기의 신뢰성을 높여주었다. 이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혼천시계는 분명한 우리의 독창적인 과학유산이지만 그 부속품인 혼천의는 엄밀하게 보면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한은 측은 세종 시대에 혼천의를 제작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송이영의 혼천시계를 모델로 하였고, 디자인을 고려해서 박스형태의 혼천시계 대신 부속품인 혼천의를 사용했다고 해명했다.

여기서 쟁점은 혼천시계에서 부속품인 혼천의만 분리하여 상징물로 사용하는 것이 용납될 수 있는 수준인지 아닌지가 아닐까 싶다. 나는 혼천시계를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돋보이고 기억에 남는 것이 혼천의였다. 사실 과학사에 무지해서인지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평범한 나무 궤짝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확대해 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혼천의만 보더라도 혼천시계와 동일시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것이 과학유산을 왜곡하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위의 비판기사들은 비판을 하기 위해 매우 엄밀하고 규범적인 주장만을 소개했다고 생각한다. 정말 과학계에 몸담는 전문가들 대부분이 화폐도안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더구나 이번 신권 도안은 지난 2006년 5월에 공개되었다. 이미 7개월동안 언론에 공개되었는데, 그 기간동안 내내 칭찬하다가 정작 유통되니까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지한 일반인들이야 도안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전공자나 전문가까지 침묵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일부 기사에서는 한국은행이 형식적으로 자문을 했다고 비판하지만 비밀스럽게 작업한 것도 아니니 문제제기는 훨씬 일찍 나올 수 있었다.

상식적으로 비판기사에서처럼 전문가들의 입장이 그토록 대동단결하여 통일된 의견을 보일리 없다. 어떤 정책이나 결정이든 이런 의견, 저런 의견이 있는 법이다. 여러 의견들을 수용한 기사를 쓰기보단 동북공정으로 심기가 불편한 네티즌들에게 중국산이니 중국것을 사용했다느니 하면서 불쾌한 감정에 불을 지피는 행위는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by 매니아시티 | 2007/01/23 21:48 | 트랙백 | 덧글(1)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